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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초김응현서예관

분류
박물관
주소
인제군 만해로 154
연락처
033-461-4081
홈페이지
없음
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이용시간
09:00~18:00(17:30까지 입장)
입장료
무료
시설사용요금
없음
장애인 편의시설
주출입구 단차없음, 시각장애인 편의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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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자리한 <여초서예관>은 근현대 한국서예사의 최고 대가로 평가받는 여초 김응현 선생의 문화재급 서예작품과 유품 그리고 국내·외 서법 관련 자료, 서적 등 총 6천여 점의 소장품이 보존 · 전시되고 있는 서예 전문 박물관이다. 여초 김응현 서예관은 당대 최고의 명필인 여초 김응현 선생을 기념하며 2013년 개관했으며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하 수장고와 여초 선생 생애관, 교육공간, 상설·기획전시실, 이용객 편의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 시집 박물관은 우리나라 근·현대기의 시집(詩集)을 체계적으로 전시·교육하는 박물관이다.

관광가이드

한국 시집 박물관 지상 1층은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시집을 대여해 읽을 수 있는 작은 도서관과 각종 체험학습이 가능한 교육·체험공간, 안내실 등이 마련돼 있다. 지상 2층은 근현대 시기(1900~1970년대) 한국 시집 등을 연대기로 전시한 상설 전시실과 시를 짓고 낭송하는 체험실, 특별전 등의 전시가 가능한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시집 박물관과 또한, 여초 김응현 서예관 인근에는 문화시설인 백담사, 만해마을 등이 있어 인제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지도보기

여행팁

여초서예관은 입구에서부터 건축물이 워낙 아름다워 이곳저곳 사진 담느라 본 전시관 입장이 늦어질 정도이다. 바깥에 원래 물이 고여있었는데 여름이라 벌레가 너무 많이 생겨 물을 뺐다고 한다. 물이 있으면 더 아름답게 건물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현관에 들어서니 좌측에 홍익인간이라는 글과 "당대 최고 명필, 그 서법에 길을 열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여초의 생애관에는 여초 김응현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여초 김응현 (1927~2007) 선생은 안동 김씨 명문 세가에서 태어난 명필로 명성을 떨친 뿌리 깊은 명필가 집안이다. 14대조 문충공 선원은 왕희 지체를 기본으로 전서 등 각종 서체에 능하였고 그 동생인 문정공 청음 또한 명필로 동기창체가 유명했다. 여초 선생은 바로 청음 문정공의 직계손이다. 이렇게 이어져 내려온 서법의 전통은 증조부 오천공, 조부 동강공으로 이어져 선생의 세형 경인 선생, 일중 선생, 백아 선생과 함께 모두 두루 학문과 글씨로 가통을 가진 가문이다. 여초 김응현 선생은 '광개토대왕비체'를 최초로 작품화하여 국내외 큰 명성을 떨쳤으며 일제 암흑기를 거쳐 침체된 한국의 서예문화를 부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정. 예. 해. 행. 초서 등 5체에 능통하였다. 여초는 광화문 현판 교체론이 대두될 당시 현역 서예가 중 1순위로 오를 정도로 신품의 경지에 오른 서예가이다. 한글과 한문을 두루 잘 썼고 전각에도 뛰어난 독보적인 존재로 한국적인 서예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실천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층 상설전시관에서는 여초 선생의 평생 서예 연구의 보급과 저변 확대를 위해 열정을 바친 발자취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다. 인품, 천질, 노력 삼위일체가 된 여초 선생의 작품세계는 고매하고 엄격한 정신을 담고 있다. 여초의 서는 그 외형을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조탁하거나 애써 꾸미지 않는다 여초의 서는 골격의 단단함이 특징인데 이는 다년간의 정통 서법에 의한 수련이 가져온 강철 같은 봉망에서 나온 것이다. 여초의 서예에서 특별히 법을 숭상하고 엄격하고 정확한 임서의 수련을 쌓아 법도의 엄정함이 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결구에 빈틈이 없다. 여초는 글씨를 쓸 때 마음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스럽고 안정된 가운데 한 번에 쓰기 때문에 주조하고 머뭇거림이 없다. 1975년 여초의 나이 48세에 초대 작가가 되었으며 50대에 들어서는 한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역사적인 사실과 더불어 유서 깊은 비문인 을영비, 장천비, 석문송, 서협송의 뜻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리고 광개토대왕 비의 웅비한 기상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창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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